워킹맘의 선택: 하이스쿨 맘의 자녀교육
유학생으로 시작되었던 필자의 미국 생활은 대학 비즈니스 스쿨의 교수 설계사 (instructional designer)의 포지션으로 연결되었다. 갓 시작되었던 사이버 대학 프로그램을 만들고 진행시키는 일이 나름 재미있었다.
공부해 왔던 영어교육과 교육 공학을 접목시켜 커리큘럼을 개발하고 새로운 교육용 테크놀로지로 상용화하여 인터넷에 알려지게 하는 것이 의미 있다고 느껴졌었다. 200년대 후반, 지금 크게 호응을 받고 있는 온라인 스쿨의 초기 단계였던 시기였다.
한참, 이렇게 신이 나서 일을 하던 중, 큰 아이는 하이 스쿨에서 그리고 작은 아이는 미들 스쿨에서 여러 가지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대부분의 맞벌이 부부의 삶이 그렇 듯이 아침부터 밤까지 정신없는 하루하루가 계속되었다. 물론 아이들의 액티비티가 작지 않았던 것도 바빴던 이유가 되기도 했다.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what if"를 그려보았다. 우리 아이들의 성별이 같아서 하는 액티비티가 같았다면,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아서 학교 등하교를 둘이 함께 할 수 있다면, 아이들 아빠가 조금 덜 바빠서 나를 도와줄 수 있었다면... 하지만, 현실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큰아이가 바이올린으로 오케스트라를 밤 10시까지 하는 동안 필자는 작은 아이와 차에서 저녁 먹고 숙제를 하게 하고 책을 읽게 했다. 작은 아이의 보이 스카우트를 데려다준 뒤 바로 차를 다른 액티비티의 장소로 향해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살고 있는 작은 도시에서 하루에 몇 시간씩 운전하는 일에 익숙해졌다. 주말이면 시 경계선 밖으로 나갔다. 특히 봄 시즌에는 지역 (regional), 주 (state) 레벨로 가는 액티비티와 대회들이 많아지면서 장거리로 움직였다. 팀으로 참여하는 경우에 담당 선생님이 가시기 때문에 꼭 함께 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아이가 캡틴이나 리더인 경우는 라이드(ride)를 해주거나 음료수, 또는 간식을 준비해 주는 것이 팁의 사기진작에 도움이 된다. 필자도 아이들과 함께 주말에 다른 도시로 많이 움직였다.
결국, 직장을 그만두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대신,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려 했다. 아이들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미국에서 시판되는 미들, 하이 스쿨, 입시에 관한 책들을 읽고 또 읽었다. 아이들의 마음을 심리적으로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글들을 찾아보고 스크랩하고 필자 스스로 변화해 보려고 노력했다. 얼마나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타이거 맘에서 벗어나 아이를 독립적으로 키워보려고 애를 썼다.
아마도 필자처럼, 지금도 같은 고민을 하고 계신 분이 있을 것이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은 조금 남는다. 미국에 와서 15년간 공부해 오며 그리던 커리어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으니까.
하지만, 아이들과 행복한 추억을 더없이 많이 만들며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에 감사하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하며 또 그 시간 동안 배우고 경험한 일들이 나에게 다른 기회를 주었다는 것 또한 감사하다.